겨울철 대보름의 ‘귀밝이술’, 잊혀진 전통문화의 의미
한국의 세시풍속 중 정월대보름은 유난히 풍성한 민속행사가 많은 절기이다. 부럼 깨기, 오곡밥 먹기, 더위팔기 등 다양한 전통이 전해지지만, 그 중에서도 '귀밝이술'은 오늘날까지도 비교적 이름은 알려져 있으나, 정작 실생활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매우 희소하다. 특히 대보름은 음력으로는 봄의 시작이지만, 양력 기준으로는 여전히 한겨울과 맞물리는 시기이므로, 겨울철 풍속과 봄맞이 의식이 함께 뒤섞이는 독특한 민속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귀밝이술은 대보름 아침, 해가 뜨기 전 마시는 술로 알려져 있다. ‘귀를 밝게 한다’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이 술은 단순한 음복의 개념이 아니라, 일 년 동안의 복된 소식, 기쁜 말, 좋은 인연을 잘 듣기 위해 미리 ‘귀를 트는’ 상징적인 행위였다. 그러나 이러한 귀밝이술의 실제 음용 방식과 그 의미는 단순히 상징으로 끝나지 않는다. 구체적인 술의 종류, 누구에게 먼저 권했는지, 어떤 예법으로 마셨는지에 대한 자료는 조선 후기 일부 민가 자료에만 드물게 언급되며, 대부분은 구전이나 지역별 관행으로 남아 있다. 이 글은 바로 그 기록 너머에 존재했던 ‘실제 귀밝이술의 사용법’을 복원하고자 한다.
귀밝이술의 재료와 제조 방식: 지역별 차이와 가족 구조에 따른 술의 성격
귀밝이술은 전통적으로는 탁주, 약주, 혹은 지역에 따라 특수한 혼합주 형태로 사용되었다. 일반적으로는 가정에서 담근 집술을 사용하였고, 이는 대보름 며칠 전부터 준비되었다. 술을 담는 시점은 ‘설이 지난 뒤 첫 술 익기 좋은 날’로 정해졌는데, 이는 겨울철 기온과 발효 시간을 고려한 결과였다. 경상도 일부 지역에서는 찹쌀과 누룩을 섞어 만든 순곡주(純穀酒)를 귀밝이술로 사용했으며, 충청도와 강원도 일부 지역은 약초를 섞은 약술 형태의 귀밝이술을 선호했다. 약초로는 익모초, 구기자, 감초가 사용되었고 이는 겨울철 체온 유지와 신진대사 촉진을 돕는 민간 지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귀밝이술은 마시는 시간도 매우 중요했다. 대부분의 기록에 따르면 ‘일출 전에’ 또는 ‘닭이 울기 전’에 마셔야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이는 민속 신앙과 천문학적 시간 개념이 결합된 것이다. 일출 전 어둠 속에서 마시는 술은 ‘속세의 소음’이 시작되기 전, 맑고 조용한 세상의 귀를 열어준다고 여겨졌으며, 따라서 이 술은 ‘조용히, 신중하게’ 마셔야 했다. 일부 가문에서는 가장이 먼저 귀밝이술을 한 모금 마신 후, 아이들에게 권하며 “복된 소식만 들을지어다”라는 말을 건넸다는 구술 자료도 존재한다.
또한, 이 술은 ‘귀’뿐만 아니라 ‘말’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귀밝이술을 마신 후에는 불필요한 말이나 욕설을 삼가고, 하루 종일 좋은 말을 하도록 권장되었다. 귀가 열리면 입도 닫아야 한다는 이 전통은 오늘날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전통 예법 중 하나다. 술 한 잔에 담긴 이 복합적 의미는 단순한 민속주를 넘어, 정신적 개입과 신년 다짐이 함께 어우러진 의례였던 것이다.
귀밝이술의 전통적인 실제 사용방법
귀밝이술은 단지 집 안에서 마시는 개인적인 음복술이 아니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마을 공동체 전체가 귀밝이술을 돌리며 복을 빌어주는 관습이 있었다. 특히 제주도와 남도 해안 지방에서는 어촌 마을 주민들이 대보름 새벽, 마을 어른 집에 모여 귀밝이술을 함께 나눠 마시고, 어업의 풍년과 건강을 기원하는 소망을 담아 짧은 의식을 치렀다. 이 술은 단지 술이 아니라, 공동체 결속의 상징물로 기능했으며, 어른이 먼저 마시고 다음 사람에게 ‘복된 소리 많이 들어라’고 말하는 장면은 지금은 사라진 겨울 민속의 정수였다.
또한, 귀밝이술은 가족 간의 위계를 드러내는 중요한 상징으로도 작용했다. 일반적인 식사와 달리 이 술은 조용히 돌려 마셨으며, 마실 때는 반드시 두 손으로 잔을 받아 ‘마음으로 소리를 듣겠다’는 자세를 취해야 했다. 이는 단순히 예법이 아니라, 일 년간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다짐의 의례였다. 특히 신혼부부나 장성한 자녀가 처음으로 귀밝이술에 참여하는 날은 성인으로서의 책임을 자각하는 첫 번째 민속 행사로 여겨졌다.
흥미로운 점은 일부 지역에서는 귀밝이술과 함께 작은 고사 상을 차려, 조왕신(부엌의 수호신)이나 조상신에게도 이 술을 먼저 올리는 의식을 행했다는 것이다. 이는 음식을 관장하는 신이 집안의 좋은 소식을 먼저 접하고 전해주길 바라는 전통 신앙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렇게 귀밝이술은 단지 한 잔의 술이 아니라, 인간 관계와 공동체, 신령과의 소통까지 포함하는 복합적 민속 의례였음을 알 수 있다.
현대에서 귀밝이술의 의미와 복원 가능성
오늘날 귀밝이술은 그 명칭은 알고 있으나, 실제 어떻게 마셨는지, 어떤 술이었는지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대보름 당일 소주나 막걸리를 마시며 ‘귀밝이술’이라 부르지만, 그것이 갖는 상징성이나 예법은 대부분 사라졌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전통문화를 복원하려는 움직임 속에서 귀밝이술도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일부 지역 문화재단이나 민속학자들은 지역 고유의 귀밝이술 제조법과 음용방식을 발굴하여 재현하고 있으며, 전통주 양조장에서도 귀밝이술 컨셉의 한정판 술을 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단순히 술을 따라 마시는 행위만으로는 이 전통이 가지는 본질을 온전히 되살릴 수 없다. 귀밝이술의 본래 의미는 ‘경청’이다. 자신보다 나이 많은 사람의 말, 사회의 흐름, 조상의 가르침, 그리고 자신의 내면 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는 ‘의식적 청취’의 다짐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을 되살려, 오늘날에도 대보름 아침 조용한 마음으로 따뜻한 전통술 한 잔을 마시며, 가족이나 이웃과 좋은 소식 나누기를 기원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귀밝이술 복원일 것이다.
귀밝이술은 결국 ‘조용한 다짐’의 술이다. 격식 없이 단정한 마음으로, 욕심보다 경청을 앞세우는 그 정신은 지금 우리 사회에 더욱 필요한 가치일 수 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잠시 멈춰 서서, 소리보다 ‘들리는 것’에 집중하려는 노력. 그것이 바로 귀밝이술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소중한 문화유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