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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이 부족한 한국 전통문화 디테일

강원도 해녀 전통문화 ‘금기어’

강원도 해녀의 전통문화 금기어

강원도에도 존재했던 전통 해녀 공동체

해녀라고 하면 대부분은 제주도를 떠올리지만, 사실 강원도의 해안 지역에서도 과거 해녀들이 활동해왔다. 특히 삼척, 고성, 속초, 양양, 주문진 등지에서는 어촌 여성들이 바다에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하는 ‘물질’을 생업으로 삼았다. 그들은 제주도 해녀와 달리 수온이 낮고 파도가 거센 동해 바다에서 짧은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작업하는 방식으로 물질을 해왔다. 강원도 해녀들은 제주도 해녀에 비해 비교적 규모는 작았지만, 공동체 의식과 생활 방식에서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해녀들 사이에는 바다와 관련된 특정 단어를 절대 말하지 않는 금기어 문화가 엄격하게 존재했다. 이 금기는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해녀 공동체가 오랜 시간 동안 생존을 위해 만들어낸 일종의 ‘언어 규율’이자 심리적 방어기제였다. 말 한 마디가 사람의 기운을 바꾸고, 바다의 기분을 건드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서는 조용함과 절제가 중요한 문화적 요소로 작용했다.

실제로 강원도의 해녀들은 바다에 나가기 전 식사를 함께 하면서도 말수를 줄이는 경향이 있었다. 웃음소리를 크게 내지 않고, 바다를 앞에 두고 농담을 주고받는 일은 삼갔다. 이는 단지 전통적인 예의범절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말이라는 것이 때로는 불행을 불러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언어 절제는 바다에 대한 공경심과 생존에 대한 두려움이 어우러진 해녀 사회의 독특한 전통이었다. 그래서 해녀 공동체에서는 자연스럽게 ‘하지 말아야 할 말’, 즉 금기어가 형성되었고, 이 금기를 어긴 경우 실제로 사고가 이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더 강력하게 금기가 지켜지게 되었다.

 

생존과 연결된 전통문화 금기어

강원도 해녀 사회에서 가장 대표적인 금기어는 ‘파도’, ‘죽다’, ‘그림자’였다. 이 단어들은 모두 해녀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요소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말이었다. 해녀들은 물질 중 가장 큰 위협 요소로 꼽히는 ‘파도’라는 단어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았고, 대신 ‘손님’, ‘그분’, ‘저분’이라는 완곡한 표현을 사용했다. 파도가 높을 것 같다고 말하는 대신 “오늘 손님이 많네”라고 말하는 식이었다. 또한 ‘죽다’는 ‘넘어간다’, ‘건너간다’, ‘가버린다’ 등으로 돌려 말했고, ‘그림자’는 ‘덩어리’나 ‘발’처럼 다른 단어로 대체했다. 이러한 우회적 표현은 단지 언어를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표현을 피함으로써 불길한 기운을 막는 실질적 행위였다.

말이라는 것은 단순한 정보 전달의 수단이 아니라, 기운을 움직이고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행위’라고 해녀들은 인식했다. 실제로 강원도 고성에서는 한 해녀가 작업 전 “오늘 파도가 세겠네”라고 말한 직후 물질 중 실족하여 익사한 사고가 발생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 사건 이후, ‘파도’라는 단어는 그 마을에서 완전히 사라지다시피 했으며, 해녀들은 더더욱 조심스럽게 말을 골라 사용하게 되었다. 해녀들이 이렇게 말을 절제하게 된 배경에는 단지 두려움뿐 아니라, 자신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운명을 공유한다는 연대의식이 작용하고 있었다. 말 한마디가 집단의 분위기를 바꾸고, 누군가의 생명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믿음은 단순히 주술적 사고가 아니라, 고위험 환경에서 형성된 실제적 생존 전략이었다.

 

공동체 질서를 지키는 무언의 규칙

해녀들은 물속에서뿐 아니라 물 밖에서도 말을 아끼는 문화를 실천했다. 작업 전후에 불필요한 말을 삼가고, 위험이나 불길한 예감을 입 밖으로 내지 않는 것이 해녀 사회의 불문율이었다. 강원도의 해녀들은 서로 손짓이나 눈짓, 짧은 신호음으로 소통하는 일이 많았으며, 바다에서 돌아온 후에도 사고 이야기를 크게 나누지 않았다. 만약 금기어를 무심코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변에서는 ‘그런 말은 하지 말라’며 조용히 타이르거나, 분위기를 급히 전환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고인의 이름을 부르거나, 얼마 전 익사한 사람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극도로 금기시되었으며, 이를 어길 경우 바다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제지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규율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지켜야 할 ‘암묵적 계약’과 같았다.

침묵은 해녀 공동체에서 단순히 말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았다. 그것은 두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안으로 끌어안는 방식이었고, 말보다 더 큰 믿음과 의지를 전하는 태도였다. 해녀들은 입을 다무는 것으로 자신을 다잡았고, 언어 대신 행동으로 생존을 증명했다. 물질 중에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고, 귀신 소리나 의심스러운 물결이 느껴져도 언급하지 않고 그저 마음속으로 기도하는 문화가 이어졌다. 이처럼 해녀 사회의 언어 금기 문화는 공동체 안에서 공포를 퍼뜨리지 않고, 각자의 두려움을 침묵 속에 녹여내는 독특한 방식이었다. 오늘날 많은 공동체가 위기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반면, 해녀들은 그 반대의 길, 즉 조용히 견디고 함께 버티는 방식을 선택했던 것이다.

 

해녀 전설로 남은 전통문화 금기어

강원도 삼척의 한 바닷가 마을에서는 오래전 한 해녀가 “오늘은 죽을지도 모르겠어”라는 말을 남기고 물질에 나선 뒤,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이후 마을에서는 ‘죽다’라는 말이 사라졌고, 해녀들은 그 단어를 입에 담는 것조차 두려워했다. 또 어떤 마을에서는 해녀가 거센 파도에 휩쓸릴 위기에 처했을 때 “손님아, 나 좀 살려다오”라고 말했더니 갑자기 바다가 잔잔해졌다는 전설도 존재한다. 이 전설들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말이라는 행위가 얼마나 강력한 기운을 불러올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해녀들이 만든 금기어는 그저 단어 몇 개를 피하는 차원이 아니라, 생명과 직결된 상징체계였고, 말의 무게를 누구보다 깊이 인식한 사람들이 남긴 언어유산이었다.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강원도 해녀 공동체가 사라지거나 전통이 희미해졌지만, 그들이 지켰던 금기어의 전설은 여전히 바닷가 마을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현대인은 정보의 과잉 속에 살며 말로 세상을 움직인다고 믿지만, 해녀들은 말 대신 침묵을 선택함으로써 더 깊고 단단한 질서를 만들어냈다. 해녀 금기어는 단지 해양 문화의 일부가 아니라, 말이 곧 운명이 되는 공간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절박한 생존 기록이었다. 우리는 이 언어의 전통을 통해 바다와 인간, 그리고 말의 관계를 다시금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금기어는 단순한 민속이 아니라, 바다를 품고 살아온 사람들의 철학이자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