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이 부족한 한국 전통문화 디테일

사라진 상복 색의 변화, 그 안에 담긴 전통적인 의식

diary3858 2025. 7. 2. 22:42

조선 시대, 죽음을 대하는 자세는 매우 엄숙하고 철저했다. 그중에서도 '상복(喪服)'은 단순한 옷이 아니었다. 그것은 고인의 명복을 비는 마음, 남은 이의 충절, 사회적 질서와 유교적 도리를 동시에 반영한 복식이었다. 그러나 공적인 유교 예법서에서는 상복의 색상을 대체로 흰색(백색)으로 통일하였지만, 민간에서는 상복 색상이 시기, 관계, 지역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졌다. 특히 지방마다 고유한 상복 문화가 존재했으며, 어떤 지역에서는 상복을 검정으로, 어떤 곳에서는 회색, 또는 누런빛이 도는 백색으로 입기도 했다. 이처럼 오늘날 거의 잊혀진 상복 색의 다양성은 단순한 미적 요소가 아닌, 죽음에 대한 조상의 세계관과 정서적 감각이 반영된 문화적 표현이었다.

 

사라진 전통 상복 색의 변화

 

전통 상복 색의 변화

공적인 기록과 의례서에 따르면, 상복은 대개 흰색으로 규정되었다. 주자가례, 가례집람과 같은 유교 경전들은 백색을 슬픔과 정결의 색으로 보았으며, 흰색 옷은 죽음을 앞에 둔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는 ‘무(無)’의 상징이었다. 유교가 지배 이념이었던 조선 사회에서 이러한 백색 상복은 이상적인 형태로 자리잡았고, 실제 조정이나 사대부 가문에서는 이를 철저히 따랐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민간에서 상복을 백색으로 통일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 백색의 톤조차 일정하지 않았다. 한지를 염색할 때와 마찬가지로, 누렇게 바랜 백색이나 회색빛이 도는 천을 입기도 했고, 때로는 아예 회색, 갈색, 혹은 연한 검정색 상복을 착용한 경우도 기록 없이 전해진다. 이는 단순한 자재 부족이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과 가문의 전통에 따라 각기 다른 슬픔의 표현 방식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경북 안동 지역에서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첫 삼일장 기간 동안은 순백색 상복을 입되, 삼우제 이후부터는 회색의 덧옷을 위에 걸쳐 입었다는 구전이 남아 있다. 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슬픔이 점차 무거운 책임감으로 바뀐다는 상징이었고, 백색이라는 초월적 정결함에 '인간적인 무게감'을 더하려는 민간 감성의 표현이었다.

 

검정과 회색, ‘깊은 슬픔’의 색으로 받아들여진 전통 상복

기록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실제 사진 자료나 구술 기록, 민속조사 보고서에서는 일부 지역에서 검정 계열의 상복을 입은 흔적이 발견된다. 충청 북부나 강원 남부 산간 지역에서는 검정빛이 도는 염색천을 상복으로 사용한 사례가 있으며, 이는 상복의 실용성과 장례기간의 기후 조건 등과도 연관이 깊었다. 하지만 단지 편의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민간에서는 검정을 ‘가장 깊은 고요와 단절의 색’으로 여겼고, 이를 통해 돌아오지 않는 이와의 절연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특히 남편을 잃은 아내나 장손을 잃은 조부모는, 흰색이 아닌 짙은 회색이나 먹빛 계열의 상복을 입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슬픔의 농도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려는 문화적 시도였으며, 한편으로는 '이 세상에서 내 역할이 끝났다'는 식의 자기 절제적 표현이기도 했다. 이처럼 검정이나 회색 상복은 공식 예법에서는 배제되었지만, 민간에서는 특정 감정의 상징 색으로 기능하며 구별된 의미를 지녔다.

또한 제주도에서는 조부모 상을 치를 때 옅은 갈색 상복을 입는 풍습이 있었다는 증언도 존재한다. 이는 선대의 은덕을 기억한다는 의미와 동시에,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색 선택으로 볼 수 있다. 갈색은 흙과 자연을 연상시키며, 삶과 죽음이 자연의 일부라는 순환적 관점을 표현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전통 상복 색의 변화가 말해주는 죽음 인식의 다층성

상복 색의 다양성은 단지 지역색이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민간에서 전해져 온 죽음에 대한 다층적 감정 구조와 시간적 해석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유교적 예법은 죽음을 하나의 질서로 보고, 이를 엄격하게 제어하려 했지만, 민간에서는 죽음을 감정적으로, 관계적으로 받아들였다. 상복의 색상이 변화하는 이유는 슬픔의 농도, 관계의 거리, 죽음을 대하는 자세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민족은 공동체적 삶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상복 색의 조절을 통해 남은 이들과의 조화를 유지하려는 문화적 습성이 존재했다. 예를 들어, 며느리는 남편의 부모상을 치를 때 흰 상복을 입었지만, 자신의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는 회색이나 누런 상복을 입기도 했다. 이는 유교적 위계질서 속에서도 감정의 우선순위가 구분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상복 색을 바꾸는 ‘다단계 상복’ 개념도 일부 지역에 존재했다. 장례 첫날은 순백, 삼우제 이후는 회백, 제삿날이 지나면 누런 천 등으로 색을 변화시켜, 슬픔을 점차 정리하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과정을 시각화했던 것이다. 이처럼 상복 색상의 변화는 삶과 죽음의 경계, 그리고 그 경계를 마주하는 태도의 다층성을 반영한 문화적 상징이었다.

 

사라진 전통 상복 색상문화

오늘날 우리는 검은 정장을 입고 조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는 서구식 장례문화의 영향이며, 우리 고유의 상복 색상 전통은 거의 잊혀진 상태다. 민간에서 전해지던 다양한 색의 상복은 현대 장례문화에서 더 이상 의미를 갖지 않게 되었고, 흰색과 검정만이 슬픔의 색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라진 색상 전통 속에서 조상의 감정, 신념, 삶에 대한 태도를 다시 읽을 수 있다.

최근에는 전통문화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전통 상복의 형태와 색을 재현하는 시도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민속박물관, 전통의례연구소 등에서는 과거 기록이 부족한 민간 상복 문화를 구술, 사진, 물품 기록을 통해 재구성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또한 전통문화 디자이너들은 이 상복 색상의 의미를 현대 복식디자인에 접목해, 슬픔과 위로의 색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시도도 하고 있다.

우리가 잊고 있던 전통 상복 색상의 의미는, 단순히 '옷의 색'을 넘어서, 사람과 죽음, 감정과 공동체 사이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문화적 언어다. 민간에서 전해진 이 섬세한 디테일을 복원하고 연구하는 일은 곧, 우리 스스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계승하는 지혜로 이어질 것이다.